어머니께서는 제게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셨죠.

2021. 7. 14. 22:44살다.

어릴 때 마늘 농사를 지었어요.


10월초에 마늘 심고 좀 있다가 비닐 씌우고 쪼그려 앉아서 송곳으로 비닐 구멍을 하나하나 뚫어야 해요.

아직 싹이 안 올라온 마늘이 있을 수 있으니 며칠 있다가 싹이 올라온 놈 찾아서 구멍 또 뚫고 숨쉬라고 비닐 밖으로 꺼내주죠.


봄이 오면 비닐 안에 나는 잡초들도 뽑고 4월이 되면 마늘쫑을 뽑아요.



마늘쫑은 말이에요. 사실 마늘의 꽃대입니다. 마늘꽃. 들어본 적 없죠?

아름다운 마늘꽃





마늘꽃이 피기 전에 꽃대(마늘쫑)를 수확하니까 직접 보기도 들어보기도 힘들죠.


일손이 모자라서 시기에 맞춰서 마늘쫑을 다 뽑지 못하게 되면 그냥 가위로 다 끊어버립니다.

꽃이 피면 열매가 맺는데, 일손 부족하다고 놔둬버리면 영양분이 꽃으로, 열매로 다 가버리기 때문에 마늘(뿌리)이 여물어지지 않거든요.

마늘농사의 역적, 마늘열매







이 마늘쫑이 올라오는 시기에 마늘의 뿌리에서는 마늘이 만들어집니다.

그 전에는 그냥 뭉툭한 게 대파랑 비슷해요. 200m 떨어져서 보면 대파랑 마늘을 구분 못할 정도로 비슷합니다. (풋마늘이라고 하죠. 이거 쌈장에 찍어먹으면 맛있어요)



자. 마늘쫑을 뽑는 식목일 무렵이 되면 바빠지고 이제 우리 형제들도 투입이 되죠. (비닐 구멍 뚫는 거나 제초는 어려서 안 시킨 것 같아요.)


마늘 쫑을 가만히 잡고 힘조절을 하면서 땡기면 마늘대에 박혀있던 아랫부분이 툭 끊어지고 좀 더 잡아당기면 뽀ㅗㅗㅗ오ㅗ옹~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뽑아집니다.

는 열 번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한 기술이고... 사실 잘 안됩니다. 그렇게 뽑다가 마늘 자체가 뽑히기도 하구요.







마늘쫑은 매일 아침 서지(마을회관)에서 경매를 하는데 너무 얇거나 중간이 끊어진 것은 상품으로 안 쳐줍니다.

그래서 그렇게 끊어먹으면 엄마한테 혼나요. 그게 다 돈인데, 잘 좀 하라고.

고급기술은 어려우니 골목 입구에 있는 탱자나무에서 탱자가시를 꺾어다가 마늘대 부분을 콕~ 찌르면, 정확하게는 마늘쫑의 밑둥에 구멍을 내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잡아당기면 그 부분이 끊어지면서 뽀ㅗ오ㅗ오옹~ 마늘쫑이 뽑힙니다. 탱자가시, 클립 등이 많이 쓰임.



그란데 말입니다.

단순노동에 익숙해지다보면 제품의 품질보다 노동 시간의 단축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죠. 숙련되다 보면 자동차 조립하면서 유튜브도 보고 막 그러는 거잖아요.

설렁설렁 하다 보면 바늘을 잘 못 찔렀든지, 치명타를 못 날렸는데 된 줄 알고 마늘쫑을 잡아당긴다든지. 아무튼 잘못 되면 푸후ㅜㄱ 하면서 마늘전체가 땅에서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뭐.. 일하다 보면 그랄 수도 있지.


마늘을 다시 땅에 잘 묻어주고, 양발로 양쪽을 밟은 상태에서 다시 잡아 당겨서 마늘쫑만 잘 잡아당겨서 뽑아야하는데,

저는 이미 숙련공이잖아요? 대~ 충 그냥 세워놓고 마늘쫑은 꺾어서 바닥에 버립니다.


숙련공은 시간 줄이는 게 중요하거든요.

빨리 뽑고 도망가야 되는데 그까이꺼 마늘쫑 한개가 대수겠습니까.


마늘이 뒤집혀도 농림부의 시계는 돌아간다고 시간이 흐르고 5월이 되면 이제 마늘을 뽑습니다.

마늘쫑을 잘 뽑았다면 알알이 실한 마늘을 수확할 수 있겠죠.

근데 마늘을 뽑기 시작하면 또 혼납니다.

4월달에 몰래 대충 세워둔 마늘이 이미 말라버렸거나 알이 제대로 열리지 않은 거를 엄마가 발견하신 거죠.


어머니는 참 대단한 거 같아요.

그 두둑을 작업한 노동자가 저라는 것을 바로 기억해내시고는 저부터 공격하십니다. 물론. 말로 공격하시죠. 아마 때리면 일 안하고 도망갈까봐 그러지 않으셨을까..


그 때가... 와.... 벌써 30년쯤 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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